레즈비언ㆍ게이 등 性아웃사이더들
고통없는 포박 통해 여성성 강조
글래머 ‘핀업걸’ 성해방 개척자로
2008 년 4월 3일 저녁 파리에서는 여성이 본디지라는 에로틱 예술을 배울 수 있는 학교가 문을 열었다. 학교 이름은 ‘인형학교(Ecole des Dolls)’다. 본디지 예술은 세상에 대한 근심이 없고 글래머 몸매를 갖춘 핀업 걸이 성해방 쪽으로 길을 연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100% 여성을 위한 러브스토어이자 사탕상자처럼 귀여운 돌하우스(Doll house)가 오픈한 인형학교는 2008년 4월 4일 금요일 저녁 ‘본디지’를 주제로 내세운 첫 강좌를 개설했다. 강사 이름은 미스 데이지. 본디지의 대가인 그녀는 수 년 전부터 밧줄로 묶는 예술을 탐구하던 샌프란시스코에서 파리로 달려왔다. ‘포박 입문’ 강의는 쇼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파리에 거주하는 댄서이자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인 루이즈 드 빌이 즐거운 에로티즘 시범에 동의한 후 실험 대상자로 나서고 있다. 두 명의 여성에게는 고통스럽거나 강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결박하거나 결박당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다. 루이즈는 “결박은 내 엉덩이를 제대로 부각시켜준다”고 말한다. 본디지 에로티즘은 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가는 허리의 요부 모습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당시 선정적인 여성을 유혹의 모델로 삼았던 것이다.
“본 디지는 형태를 강조하면서 여성의 육체를 리모델링한다”고 정신분석학자 장 피에르 부르주롱은 강조한다. “여성이 줄에 묶이면 유방이 튀어나오고, 허리가 잘록해집니다. 또 팔이 뒤로 묶이면 상반신이 앞으로 돌출합니다. 엉덩이는 아주 동그란 모양이 되지요. 몸매가 지극히 평평한 여성, 곧 남녀 양성인 안드로진과 정반대 모습이 된다는 이야깁니다. 형태는 여성성의 원형을 의미하는 선사시대 조각품인 레스퓌그의 비너스상에 상당히 흡사하지요. 줄에 묶인 여성은 자신의 가치가 드높아지고 여성의 모습이 강조되었다고 느낍니다.” 루이즈는 한 걸음 더 나아가기까지 한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모습은 여성 해방과 짝을 이룬다. “하이힐을 신는 것은 저항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오브제로서의 여성 신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내가 전투적인 여성이기에, 여성적인 것도 남성적인 것만큼이나 훌륭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요. 여성성을 재평가해야 합니다.”
낮에는 교사생활을 하고, 밤에는 에로틱한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루이즈는 ‘울트라 섹시’를 모토로 내세우는 선동가 그룹의 일원이다. 그들은 처녀, 그리고 처녀를 사랑하는 처녀를 또 사랑하는 남성만 참석할 수 있는 파티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그들은 축제 분위기를 즐기면서 마시고, 외출하며, 춤추고, 도발적인 속옷 입기를 즐긴다. 익살스러운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것이다. 선정적인 의상을 걸친 루이즈는 비타민이 가득한 수프 효과를 낸다. 그녀는 ‘펨-펨(fem-fem)’이라 불리는 부류다. 다시 말해 삶에 대한 지고한 행복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여자이기를’ 추구하는 당당한 LGBT 운동가 중 한 명이다. LGBT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아우른 개념이다. 베티 페이지가 맘보 리듬에 맞춰 옷을 벗던 1950년대 풍경을 반복하며 루이즈는 ‘뷔를레스크’라는 이름의 스트립쇼를 벌인다.
핀업 복장의 스타가 등장하는 ‘뷔를레스크 스트립쇼’는 유머가 차고 넘치는 공연이다. 쇼에서는 벗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유쾌함, 아이러니, 흥겨운 기분을 곁들여 ‘섹스 동물’ 놀이를 하기에 관객은 몸을 쳐다볼 시간조차 없다. 미국에서 뷔를레스크 공연을 이끈 선구자는 릴리 세인트 시르, 딕시 에반스, 블레이즈 스타, 템페스트 스톰,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티 페이지다. 그들의 역사는 어빙 클로란 이름의 한 서점 주인이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핀업 걸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반쯤 비밀스럽게 시작됐다. 그녀들은 킥킥거리며 서로 싸우는 척했고, 구두 굽이 15㎝나 되는 하이힐을 신고 발을 굴렀으며, 속옷을 입은 상태에서 소시지처럼 서로를 줄로 연결시켰다. 이런 방식은 모두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미국 본디지의 시작이 비키니 및 ‘정글’ 스타일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때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즐기며 행복을 추구했다. 당시 주부는 나일론 치마를 걸치고서 ‘이국적인’ 차차차 리듬을 들으며 청소기를 틀어댔다.
베 티 페이지는 짧은 치마를 걸쳤다. 그녀는 할리우드에서 가수가 되기를 꿈꾸던 중이었는데, 맨다리를 한 아주 키치적인 ‘치즈케이크’ 사진으로 유명해졌다. 당시 수십명의 마네킹이 가터벨트를 착용한 채 어빙 클로를 위해 포즈를 취했지만, 그 누구도 베티 페이지처럼 즐거운 포즈를 취하지는 못했다. 두 눈 사이 거리가 너무 벌어진 그녀는 폭발적인 장난기를 통해 공포를 흉내냈고, 그것이 베티 페이지로 하여금 치기어린 사도마조히즘의 심벌로 만든다. 애석하게도 당시 그 누구도 벗은 몸의 아름다움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뷔를레스크 영화는 암암리에 판매되었다. 모델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혐의를 받았고, 1957년 어빙 클로는 ‘중죄 음모’로 고소됐다. 우체국을 통해 음란한 물건을 발송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감옥행을 피하기 위해 그는 모든 영화와 사진을 폐기했고, 질병에 걸려 1964년 숨을 거둔다. 반면 할리우드와 못다 이룬 꿈을 저버리며 테네시의 핀업 걸이었던 베티 페이지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1958년 완전히 종적을 감춘다.
그녀에 대해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어빙 클로의 사진 몇 장뿐이다. 어빙 클로의 여동생이었던 파울라가 사진을 FBI에서 빼앗아 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녀는 금지된 네거티브 필름과 최근 ‘베티 페이지 다크 앤젤’이란 제목으로 DVD로 출시된 일부 자료를 오랫동안 보관하게 된다. 어쨌거나 베티 페이지가 남긴 교훈은 마침내 빛을 보게 되었다. 현재 검은 술 장식을 달고 핏빛 화장을 한 수백명의 여성이 여성 해방을 부르짖고 있는 탓이다. 4월 4일 원기왕성하게 인형학교에 등장한 루이즈도 예외가 아니다.
고통없는 포박 통해 여성성 강조
글래머 ‘핀업걸’ 성해방 개척자로
2008 년 4월 3일 저녁 파리에서는 여성이 본디지라는 에로틱 예술을 배울 수 있는 학교가 문을 열었다. 학교 이름은 ‘인형학교(Ecole des Dolls)’다. 본디지 예술은 세상에 대한 근심이 없고 글래머 몸매를 갖춘 핀업 걸이 성해방 쪽으로 길을 연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100% 여성을 위한 러브스토어이자 사탕상자처럼 귀여운 돌하우스(Doll house)가 오픈한 인형학교는 2008년 4월 4일 금요일 저녁 ‘본디지’를 주제로 내세운 첫 강좌를 개설했다. 강사 이름은 미스 데이지. 본디지의 대가인 그녀는 수 년 전부터 밧줄로 묶는 예술을 탐구하던 샌프란시스코에서 파리로 달려왔다. ‘포박 입문’ 강의는 쇼 형태로 이루어지는데, 파리에 거주하는 댄서이자 쾌활한 성격의 소유자인 루이즈 드 빌이 즐거운 에로티즘 시범에 동의한 후 실험 대상자로 나서고 있다. 두 명의 여성에게는 고통스럽거나 강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결박하거나 결박당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다. 루이즈는 “결박은 내 엉덩이를 제대로 부각시켜준다”고 말한다. 본디지 에로티즘은 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가는 허리의 요부 모습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당시 선정적인 여성을 유혹의 모델로 삼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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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디지는 형태를 강조하면서 여성의 육체를 리모델링한다”고 정신분석학자 장 피에르 부르주롱은 강조한다. “여성이 줄에 묶이면 유방이 튀어나오고, 허리가 잘록해집니다. 또 팔이 뒤로 묶이면 상반신이 앞으로 돌출합니다. 엉덩이는 아주 동그란 모양이 되지요. 몸매가 지극히 평평한 여성, 곧 남녀 양성인 안드로진과 정반대 모습이 된다는 이야깁니다. 형태는 여성성의 원형을 의미하는 선사시대 조각품인 레스퓌그의 비너스상에 상당히 흡사하지요. 줄에 묶인 여성은 자신의 가치가 드높아지고 여성의 모습이 강조되었다고 느낍니다.” 루이즈는 한 걸음 더 나아가기까지 한다.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이런 모습은 여성 해방과 짝을 이룬다. “하이힐을 신는 것은 저항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오브제로서의 여성 신화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내가 전투적인 여성이기에, 여성적인 것도 남성적인 것만큼이나 훌륭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어요. 여성성을 재평가해야 합니다.”
낮에는 교사생활을 하고, 밤에는 에로틱한 퍼포먼스에 참여하는 루이즈는 ‘울트라 섹시’를 모토로 내세우는 선동가 그룹의 일원이다. 그들은 처녀, 그리고 처녀를 사랑하는 처녀를 또 사랑하는 남성만 참석할 수 있는 파티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그들은 축제 분위기를 즐기면서 마시고, 외출하며, 춤추고, 도발적인 속옷 입기를 즐긴다. 익살스러운 방식으로 페미니스트를 자처하는 것이다. 선정적인 의상을 걸친 루이즈는 비타민이 가득한 수프 효과를 낸다. 그녀는 ‘펨-펨(fem-fem)’이라 불리는 부류다. 다시 말해 삶에 대한 지고한 행복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여자이기를’ 추구하는 당당한 LGBT 운동가 중 한 명이다. LGBT는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 트랜스젠더를 아우른 개념이다. 베티 페이지가 맘보 리듬에 맞춰 옷을 벗던 1950년대 풍경을 반복하며 루이즈는 ‘뷔를레스크’라는 이름의 스트립쇼를 벌인다.
핀업 복장의 스타가 등장하는 ‘뷔를레스크 스트립쇼’는 유머가 차고 넘치는 공연이다. 쇼에서는 벗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유쾌함, 아이러니, 흥겨운 기분을 곁들여 ‘섹스 동물’ 놀이를 하기에 관객은 몸을 쳐다볼 시간조차 없다. 미국에서 뷔를레스크 공연을 이끈 선구자는 릴리 세인트 시르, 딕시 에반스, 블레이즈 스타, 템페스트 스톰, 그리고 무엇보다도 베티 페이지다. 그들의 역사는 어빙 클로란 이름의 한 서점 주인이 서로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핀업 걸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반쯤 비밀스럽게 시작됐다. 그녀들은 킥킥거리며 서로 싸우는 척했고, 구두 굽이 15㎝나 되는 하이힐을 신고 발을 굴렀으며, 속옷을 입은 상태에서 소시지처럼 서로를 줄로 연결시켰다. 이런 방식은 모두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미국 본디지의 시작이 비키니 및 ‘정글’ 스타일이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때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즐기며 행복을 추구했다. 당시 주부는 나일론 치마를 걸치고서 ‘이국적인’ 차차차 리듬을 들으며 청소기를 틀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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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빙 클로가 찍은 전설적인 베티 페이지. |
베 티 페이지는 짧은 치마를 걸쳤다. 그녀는 할리우드에서 가수가 되기를 꿈꾸던 중이었는데, 맨다리를 한 아주 키치적인 ‘치즈케이크’ 사진으로 유명해졌다. 당시 수십명의 마네킹이 가터벨트를 착용한 채 어빙 클로를 위해 포즈를 취했지만, 그 누구도 베티 페이지처럼 즐거운 포즈를 취하지는 못했다. 두 눈 사이 거리가 너무 벌어진 그녀는 폭발적인 장난기를 통해 공포를 흉내냈고, 그것이 베티 페이지로 하여금 치기어린 사도마조히즘의 심벌로 만든다. 애석하게도 당시 그 누구도 벗은 몸의 아름다움에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았다. 뷔를레스크 영화는 암암리에 판매되었다. 모델은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혐의를 받았고, 1957년 어빙 클로는 ‘중죄 음모’로 고소됐다. 우체국을 통해 음란한 물건을 발송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감옥행을 피하기 위해 그는 모든 영화와 사진을 폐기했고, 질병에 걸려 1964년 숨을 거둔다. 반면 할리우드와 못다 이룬 꿈을 저버리며 테네시의 핀업 걸이었던 베티 페이지는 사람들의 무관심 속에 1958년 완전히 종적을 감춘다.
그녀에 대해 남아 있는 것이라고는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어빙 클로의 사진 몇 장뿐이다. 어빙 클로의 여동생이었던 파울라가 사진을 FBI에서 빼앗아 오는 데 성공한 것이다. 그녀는 금지된 네거티브 필름과 최근 ‘베티 페이지 다크 앤젤’이란 제목으로 DVD로 출시된 일부 자료를 오랫동안 보관하게 된다. 어쨌거나 베티 페이지가 남긴 교훈은 마침내 빛을 보게 되었다. 현재 검은 술 장식을 달고 핏빛 화장을 한 수백명의 여성이 여성 해방을 부르짖고 있는 탓이다. 4월 4일 원기왕성하게 인형학교에 등장한 루이즈도 예외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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